‘스끼다시…’등 인디계서 인기
자금난에 은퇴 고비 넘었지만
1일 병원으로…쾌유기원 쇄도
아, 머리가 아파온다. 숙취인가? 하긴 밤새 마시고 새벽녘에야 들어왔으니. 어젠 기분이 너무 좋았어. 밴드로는 다섯달 만에 한 클럽 공연이었으니까. 뒷풀이에서 아는 형님이 술값을 쏴서 돈도 굳고 말야. 콩나물국으로 해장을 해야지. 이제 라면은 지겨워. 끓기 시작하는군. 좀만 더 기다리자.
왜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 홍대 독문학과 92학번 이진원은 참 평범했는데 말야. 음악 동아리 ‘뚜라미’에서 통기타 좀 친 게 그나마 특별했달까? 그때만 해도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졸업 즈음 닥친 ‘아이엠에프 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샐러리맨이 됐겠지.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들어간 음반사, 인터넷 방송국에선 얼마 가지 못했어. 그때 난 결심했어. 이렇게 된 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실컷 해보자고. 그래서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된 거야. 지하에 사는 요정이라니….
2003년 첫 앨범 <인필드 플라이>를 완성했어. 집에서 혼자 연주며 노래며 녹음이며 다했지. 기타 파트 녹음 뒤엔 기타를 팔고 베이스를 샀어. 베이스 파트 녹음 뒤엔 베이스를 팔고 믹싱 장비를 사는 식이었어. 근데 나름 대박이 난 거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시디가 1599장이나 팔렸어.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은 어느 라디오 인디 차트 1위에도 올랐지. 노랫말에 밴 ‘루저’ 정서에 다들 공감했나 봐. 2004년 음반을 재발매하고, 신문사와 인터뷰까지 했다니까.
방송국에선 ‘절룩거리네’는 장애인 비하, ‘스끼다시…’는 국적 불명 언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온라인에선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 등으로 인기가 좋았어. 근데 이상하지? 디지털 음원 회사에선 돈 한푼 안 들어왔어. 알아보니 음원을 하나 내려받으면 가수에게 30~50원, 실시간 듣기, 배경음악, 벨소리, 통화대기음 등은 기껏해야 3~4원이 들어오는 구조더라고. 그것도 어느 정도 금액을 넘어서야 몰아서 지급한다고 하더군. 항의하니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를 주지 뭐야. 짜증이 나서 ‘도토리’라는 노래를 만들어 2008년 발표한 3집 <굿바이 알루미늄>에 실었어. 다람쥐 반찬만 먹고 살 순 없잖아?
그러고 보니 3집도 참 어렵게 만들었지. 2006년 발표한 2집 <스코어링 포지션>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지원금 1천만원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제도가 폐지됐어. 전업 음악인으로 연봉 1200만원만 되면 음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연봉이 1천만원인 거야. 은퇴를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어. 능력 없이 열망만 넘쳤던 인디 음악인이 삼십대 중반이 돼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패배자이며 낙오자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노래한 게 바로 3집이야. 올 3월엔 미니앨범 <전투형 달빛요정-프로토타입 에이>를 전투적으로 냈어. 이젠 힘을 좀 내보려고 해. 언젠가는 ‘축배’를 들 날이 오지 않겠어?
음, 콩나물국이 다 됐네. 한 숟갈 떠볼까? 억! 머리가 왜 이리 아프지? 의식이 흐려져.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어~(이상은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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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주자 만루 투아웃 투스리 풀카운트/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온 거야/ 오늘을 기다렸어 지금이 바로 그때/ 모두 다 일어나 외쳐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중에서)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음악하기 참 힘들다.. 하늘나라에서 계속해서 멋진 음악 만드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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